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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왜 익명에서 더 공격적일까?

by chaniko 2025. 5. 23.

디지털 시대에서 댓글란은 현대판 광장과도 같습니다. 뉴스 기사, 유튜브 영상, 트위터 글 아래에는 사람들이 각자의 의견을 빠르게 남깁니다. 그런데 때로는 그 댓글들이 놀라울 정도로 공격적이기도 하죠. 특히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익명으로 활동할 때, 사람들은 평소보다 훨씬 더 거칠어집니다.

왜 그럴까요? 평소에는 온화한 사람조차, 왜 화면 뒤에서는 공격적으로 변하는 걸까요?

심리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수년간 연구해 왔습니다. 그 원인은 익명성, 억제 해제, 집단 심리, 그리고 개인 내면의 불안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이 글에서는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더 공격적으로 변하는 심리적 메커니즘을 분석합니다.

댓글 작성하는 키보드 자판위의 손

1. 온라인 억제 해제 효과: 익명성이 주는 심리적 마스크

이 현상을 설명하는 가장 유명한 이론 중 하나는 바로 온라인 억제 해제 효과(Online Disinhibition Effect)입니다. 심리학자 존 슐러(John Suler)가 2004년에 제시한 이 개념은, 사람들이 디지털 공간에서 현실보다 억제가 풀려 더 과감하게 행동하는 경향을 뜻합니다.

이 억제 해제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 긍정적 억제 해제: 감정이나 개인적인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는 경우
  • 부정적 억제 해제: 증오, 위협, 공격적인 비난 등을 쏟아내는 경우

익명성은 심리적 방패 역할을 합니다. 누군가가 자신의 말에 책임질 필요가 없다고 느낄 때, 그 사람의 도덕적 판단 기준은 흐려질 수 있습니다. "내가 누군지 아무도 모르니까"라는 생각이, 현실에서는 절대 하지 않을 말을 쉽게 내뱉게 만들죠.

또한, 댓글을 통해 상대한테 직접적인 감정적 반응(예: 울음, 상처받은 표정 등)을 보지 않기 때문에 타인을 비인간화하기 쉬워집니다. 결국, 화면은 상대방의 인격을 지워버리는 장벽이 되어버리는 셈입니다.

2. 탈개인화와 군중 심리: 집단 속에서 사라지는 '나'

또 하나의 핵심 개념은 탈개인화(Deindividuation)입니다. 이는 사람이 집단 속에서 자아 인식이 흐려지고, 자신이 아니라 '무리'로 행동하게 되는 심리 현상을 뜻합니다. 이는 스탠퍼드 감옥 실험 등에서 극적으로 드러난 바 있습니다.

익명 기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 사용자들이 특정 집단(정치 성향, 팬덤 등) 정체성에 몰입하게 되고
  • 개인으로서의 책임감이 줄어들며
  • 집단의 공격성이 증폭되는 군중 심리가 작동합니다

이로 인해 댓글란은 하나의 전장이 됩니다. 내 집단을 지지하고, 반대편을 공격하는 것이 ‘정당화’되는 환경이 조성되는 것이죠.

레딧(Reddit), 트위터(X) 같은 플랫폼에서는 이러한 심리가 더욱 강화됩니다. 누군가의 냉소적인 댓글이나 공격적인 말이 ‘좋아요’나 ‘공감’ 등의 형태로 지지를 받으면, 그 행동은 사회적 보상으로 이어지고 또 반복됩니다.

3. 투사와 불안: 통제력을 얻기 위한 방어적 공격성

모든 온라인 공격이 단순히 악의적인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그것이 심리적 방어기제의 일환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불안, 열등감, 좌절감을 낯선 사람에게 투사(projection)함으로써 심리적 해소를 시도합니다.

예를 들면:

  •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 타인을 깎아내리며 스스로를 위안하기도 하고
  • 현실에서 무력감을 느끼는 사람이 온라인에서는 지배력을 행사하려 하기도 하며
  • 일부 트롤은 단순히 관심을 끌고자 공격적인 언행을 하기도 합니다

결국 댓글은 일종의 해소 수단이 됩니다. 현실에서 느끼는 무기력함이나 억눌림을, 익명이라는 ‘무대’ 위에서 풀어내는 것이죠.

게다가 온라인상에서는 목소리, 표정, 몸짓 등 공감 단서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상대방의 감정을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이처럼 감정적으로 ‘눈이 먼’ 환경은, 타인을 더 쉽게 비인간화하게 만듭니다.

문제를 이해하는 것이 해결의 시작이다

익명 기반 온라인 공격성은 단순한 ‘나쁜 말’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는 인간 심리의 복잡한 작용, 즉 억제 해제, 집단 심리, 불안 투사 등의 결과입니다.

이러한 현상을 이해한다고 해서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지만, 문제를 정확히 이해해야 제대로 된 해결책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플랫폼 차원에서는 더 나은 신고 시스템, 건강한 커뮤니티 조성, 제한된 익명성 도입 등이 필요합니다. 개인 사용자로서도, 우리가 왜 이런 감정에 휩쓸리는지 스스로 자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결국 인터넷은 우리 자신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가장 빛날 때뿐 아니라, 가장 상처받고 흔들릴 때의 모습까지도요. 온라인 공격성의 심리를 제대로 이해하고 공유한다면, 더 따뜻하고 존중받는 디지털 공간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